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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FOLKKING   [purero@empal.com]
제   목     [음반리뷰] 손병휘 4집 '삶86' --대중음악비평웹진<가슴>(박준흠)
File#1     4집 이미지(2).jpg (size : 170.9 Kb)     Download : 1729










박준흠
2007/06/03

1. 내 인생의 마라톤
2. 무 대리를 위하여
3. 그 때를 아시나요?
4. 386
5. 오래된 정원
6.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
7. 나의 노래가
8. 동창생
9. 늦기 전에
10. 니베아 향기처럼
11. 다시 새벽 세시
12. 다시 살아오는 고구려
13. 나의 노래가 -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 3


1.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민중음악

노래마을 4집 [희망을 위하여/날자 한번 더 날자](1998)에 참여한 손병휘는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1집 [속눈썹](2000/문화강국), 2집 [나란히 가지 않아도](2003/동아뮤직), 3집 [촛불의 바다 - 전쟁과 평화](2005/손병휘)를 발표하였고, 연영석, 박창근 등과 함께 민중음악 쪽의 몇 안 되는 주목할만한 ‘젊은 음악창작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는 연영석과 함께 이미 40대에 접어들어서 ‘젊은’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민망한 측면이 있지만, 아래 연배의 주목할만한 음악창작자로는 박창근 정도 밖에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막내’라는 의미가 담긴 ‘젊은’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녀야할 지도 모르겠다.(박창근의 현재 활동을 보면 인디음악에 가깝기는 하다. 물론 이제 인디음악과 민중음악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2000년대의 민중음악은 크게 보면 인디음악 안에 편입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웃자고 얘기하면, 이런 상황은 손병휘 개인에게는 기쁨일 수는 있겠지만(?) 한국 민중음악씬에서 바라본다면 참으로 처참한 일이다.

한국 민중음악은 1970년대부터 우리사회의 음지를 밝히고 약자를 지키고 진보를 지지하는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왔고,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 역할이 분명했었다. 현재는 적극적으로 싸워야할 거대한 대상이 사라진 다원화된 사회라서(물론 지금도 싸우고 극복해야할 극악무도한 시스템은 상존하고, 우리사회의 ‘개인’들에게는 이제부터가 진짜로 싸워야할 시기이지만) 민중음악은 일면 존재의미를 잃은 것처럼 보이고, 시대에 뒤쳐져 보이는 음악 형태로 해외음악 마니아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민중음악은 과거의 활동과 업적만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소득 4만달러를 지향하는 2007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그 활동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는 민중음악을 음악적인 면에서, 특히 음악창작자의 창작활동 측면에서 보기보다는 민중음악이 필요한 현장에서 음악과 뮤지션이 어떻게 기능적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영미권) 대중음악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음악미학을 따질 겨를도 없었고, 뮤지션 개인을 드러내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었다. 그보다는 군사독재에 맞서던 민중들의 시위현장에서,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강요하는 기업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집회현장에서 이들을 독려하고 지지해줄 민중음악 뮤지션과 노래가 ‘필요’했었다. 그러니 한국처럼 ‘한가롭지 않았던’ 나라에서 민중음악의 음악적인 모습은 일반적인 음악마니아들이 보기에 구렸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음악평론가/음악마니아 입장에서 한국 민중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한다면, 이제는 달라진 환경을 고려해서 ‘음악창작자’ 중심으로 민중음악씬이 재편되기를 바라고 또한 그게 타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개인 삶의 질이 나아질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적인 양극화가 점점 더 극대화되어 가는 이 시기에, 아직도 개인의 존엄이 일상적으로 무시되는 이 시기에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한 도구로써의 민중음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가끔 민중음악콘서트에서 보는 시대착오적인 음악에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음악이 ‘한류’ ‘문화콘텐츠’로 그럴싸하게 포장되는 아이돌스타들의 기획상품(노래가 아니라!)보다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음악의 전통이 소멸되어가는 이 시기에 민중음악 창작자들마저 드물게 나오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40대에 접어든 손병휘나 연영석과 같은 이들이 민중음악창작자 진영에서 ‘막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주변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이고(또는 주변에 관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자신의 삶이 곤궁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약자들이 점점 더 구석에 내몰리는 것을 방조하는 행위가 된다.


2. 2007년 현재 민중음악 안에서의 손병휘 4집 [삶86]

다시 손병휘의 4집 [삶86]으로 돌아와서 얘기하겠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음반은 “80년대를 경험했던, 2007년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하고, 또한 “하루의 흐름에 맞춰 곡이 진행 된다”는 두 가지 의미에서 ‘콘셉 앨범(Concept Album)'이라고 한다. 특히 3번부터 6번곡까지를 노래 사이에 여백을 두지 않는 메들리 형식으로 만들어서 이 앨범의 주제를 표현했다고 한다.

이 앨범은 이전 앨범들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점들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번 4집에 와서야 전곡을 혼자서 작사/작곡 했다는 점이다. 데뷔 앨범 [속눈썹] 같은 경우는 김현성, 이지상, 안치환 등이 했던 앨범제작 방식과 같이 시인들의 시작품에 자신의 곡을 붙이는 식으로 노래를 완성했다. 그래서 1집에서는 류시화, 도종환, 정지원, 안도현 등 유명 시인들의 작품들이 가사로 차용되었다. 하지만 시인들의 작품을 가사로 차용하는 방식에는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종이 헷갈릴 때가 있고, 안치환처럼 명확한 앨범 콘셉 하에서 시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을 위한 트리뷰트 앨범으로 비쳐지는 문제점이 있다. 그 점에서 [속눈썹]은 손병휘라는 개인 뮤지션을 드러내는 데는 다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나란히 가지 않아도 2>가 수록된 2집 [나란히 가지 않아도]를 발표했다. 앨범 디렉팅과 세션으로 참여한 프리다칼로 멤버들(김현, 문건식 등)을 대동하고 황량한 홍대 철길을 배경으로 찍은 앨범 뒷면 사진은 그 당당함과 건달스러움(?)으로 인해서 이번에는 뭔가 작품이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난 정말로 이 음반을 듣기 전에 앨범 뒷면 사진만을 보고 최건의 작품 같은 것이 나온 것으로 생각하고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사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순화된 노래들이 담겨져 있는데, 이건 분명히 프로듀싱에서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손병휘는 다소 파워가 떨어지는 자신의 보컬톤 때문에 이 음반에 와서는 점점 더 ‘미성’을 지향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음악에는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4집까지 들어본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금보다는 더 내지를 필요가 있어 보이고, 그는 분노를 숨기지 말고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어디 노래 부르는 것이 음악비지니스를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후 3집 [촛불의 바다 - 전쟁과 평화]에 와서야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었는데, 이는 이전과 달리 이 때부터 앨범 재킷과 포장(3집부터 디지팩임)에 신경을 쓴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자신의 작사곡 <모든 것, 그리고...>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뿐만 아니라 신동호의 <나비>, 허수경의 <여자 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집을 묻는다> 그리고 대작인 박노해의 <시르 야 디즐라>와 <촛불의 바다>까지 일관된 느낌도 있고, 뮤지션으로서의 성장도 느껴진다. 2005년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는 ‘민중음악 30년’ 코너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손병휘는 연영석, 안치환, 꽃다지, 노찾사와 함께 출연을 했었다. 이 때 <촛불의 바다>를 부르면서 관객들에게 라이터불을 켜서 흔들게 하는 동시퍼포먼스를 유도 했었는데, 상당수의 관객들이 이에 호응을 해주면서 공연장에서 일대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4집 [삶86]을 발표했다. 감히 얘기하겠는데, 이 작품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다. 첫 번째는, 손병휘 개인에게 있어 ‘1기 손병휘의 완성’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곡들을 앨범에 적절하게 융화시켜 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전과 달리 독자적으로 작사/작곡을 완성해 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콘셉 앨범’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관된 주제와 성향을 가진 노래들이 담긴 앨범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세션에서의 진일보도 보여지고, 감정이 충만한 노래들도 담겨있다. 본인의 고백에 의하면 “앨범을 녹음하면서 처음으로 울어본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이게 <386><오래된 정원><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 연작과 예전 ‘노래마을’ 동료들인 이지상, 이정열, 정은주가 참여한 <나의 노래가 -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 3>을 녹음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만치 이 노래들은 앨범에서의 백미이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386>과 같은 곡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김종호의 트럼펫 전주로 시작되는 <386>은 1987년 6월 10일(6월 항쟁)을 기리는, 당시 뜨거운 가슴을 가졌던 청년들을 위한 노래이다. 손병휘는 이 노래에서 담담한 어조로 1987년의 이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한번쯤은 뜨거웠던,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오월이면 피가 끓는, 거리에서 함께했던/
축배가 너무 빨랐지 하지만 너무 늦진 않았어/
나의 사랑 나의 분노/
나의 추억 나의 현재/
나의 열정 나의 열망/
나의 현재 나의 미래/
많은 이가 기대했던, 많은 이가 실망했던/
이십년 전의 그 약속 지금도 계속 되는 꿈
(<386>, 손병휘 작사, 작곡)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우리는 너무 빨리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70~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주위의 선배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시대의 빠른 변화와 경제적인 풍요가 “그들이 우리사회에서 마저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갔다”는 것이고, 비록 그들이 반대급부를 얻었을지언정 한편으로는 공허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4.19민중혁명에 이어서 또 다시 ‘화석화’되어가는 6.10민중혁명을 바라보는 것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우리의 자존을 스스로 뭉개는 행위이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6월항쟁을 기리는 노래들이 드문 것인가?

그리고 노래 끝 부분에 고 문익환 목사의 1987년 이한열열사 장례식 조사가 삽입된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도 이 음반에서 매우 중요한 곡이다. 8분여의 대곡으로 정은주의 웅장한 멜로트론 연주와 문건식의 묵직한 기타 연주가 노래의 감동을 배가시키는데, 여기에는 이 음반의 주제를 담고 있다.(그의 말에 의하면 ‘물결치는 멜로트론 소리’는 자신이 ‘Art Rock’의 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번 음반에서 손병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곡의 가사를 꼭 읽어 보아야 한다.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
(손병휘 작사, 작곡)

그래! 시작은 아무 것도 아니었지. 샘으로 솟아났을 뿐이지
가파른 계곡에서 떨어지고 큰 바위에 부딪히기도 했지
다른데서 온 물도 만났지 비와 눈으로도 만났지
섞여 흘러가니 괜찮더군. 그렇게 우린 더 커진 거야

똑바로 가진 못했지만 한 번도 거꾸로 가진 않았어
자주 돌아가기도 했지만 한 번도 멈추지는 않았어

어느 누군가 홀로 외쳤지. 작은 외침이었을 뿐이지
어느 누군가 그 소릴 들었지. 그는 함께 외치기 시작했지
아무도 아니다 말 못할 때 누구도 그렇다고도 못할 때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느새 큰 물결이 되었지

똑바로 가진 못했지만 한 번도 거꾸로 가진 않았어
자주 돌아가기도 했지만 한 번도 멈추지는 않았어

그래!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바다로 가지

똑바로 가진 못했지만 한 번도 거꾸로 가진 않았어
자주 돌아가기도 했지만 한 번도 멈추지는 않았어




인쇄하기  (작성일 : 2007년 06월 07일 (13:21),   조회수 : 3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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