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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관리자   [purero@empal.com]
제   목     [오마이뉴스] "모두가 양심의 촛불 하나씩 밝혔으면" [인터뷰] '거리의 가수, 참여하는 가수' 손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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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나는 이 길을 걸어가 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앞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고/서로 마주보며 웃음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가수 손병휘(39)의 '나란히 가지 않아도 2'. 평화와 반전을 위해,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해 혹은
미군 장갑차 에 희생된 두 소녀들의 진혼을 위해 촛불시위에 참석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노래다.

시종일관 '세상 속 사람들과 함께 하는 노래'를 지향해온 손병휘가 최근 3집 앨범 '촛불의
바다'를 내놓았다. 55년 전 전쟁이 준 이데올로기 상처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한국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전쟁 이후'를 겪고 있는 이라크, '깨어진 평화' 탓에 신음하고 있는 체첸과 보스니아.

손병휘의 노래는 이들의 상처와 신음을 부드러운 손길로 매만진다. 시인 박노해와 신동호의
시에 곡을 붙이 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와 아메리카 인디언 수우족 추장 '노란 종달새'의 입을
빌어.

'촛불의 바다'...시와 노래의 어우러짐

뜨거웠던 청년시절의 다짐을 잊지 말자는 '모든 것, 그리고'를 시작으로 멸망해 가는 종족의
고통 속에서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이들이 하늘에 올린 '자연과 사람을
위한 기도'. 거기에 이라크에 서 살해당한 김선일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거쳐 평화를 위한 세계시민 의 연대를 제안하는 '촛불의 바다'가 담긴 손병휘의
3집 앨범.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공부에 모든 것을 걸 수 없었던' 80년대를 열심히 산 탓에 결국
11학기만에 꼴찌졸업을 한 이력의 소유자이자, '촛불시위 세대'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손병휘를 만났다. 추적추적 비 내리던 6월의 마지막 주 허름한 목로에서였다.

- 음악을 시작한 시기와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영향을 끼친 선배 뮤지션은 누군가.

“노래를 그럴 듯하게 부르고 싶어 중3 겨울방학 때 기타를 처음 잡았다. 당시엔 비틀즈를
무척 좋아했으며 성시완씨가 진행하는 FM 음악방송을 통해 아트록에 심취하기도 했다. 대학
들어와서는 민중가요에 많은 영 향을 받았다. 92년 대선 때 문선활동에 참여하면서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을 만났고, 가입권유를 받아 이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웃음).”

- 세칭 이야기되는 '거리의 가수' 중 한 명이다. '순수'보다 '참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가
있는지.

“원래 데모하다가 음악을 시작한 만큼 ‘참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웠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가(과 수석),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11학기만에 꼴찌 졸업)하면서 대학때
바뀐 세계관과 인생관을 음악을 통해 실현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 지향엔 변함이 없다.”

우리에게 슬픔을 강제하는 것들

- 당신 노래에선 즐겁고 행복한 사람보다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읽힌다.
세상이 이렇게 아픈 까닭은 뭐라고 보는가.

“우리나라만 국한해서 본다면 봉건잔재와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과 분단을 겪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나온 3집 앨범을 한마디로 줄여서 말한다면.

“어려운 부탁이다. 다만 앨범 녹음하면서 이런 생각은 했다. ‘아 이 앨범을 만들려고 내가
음악을 시작한 거 구나’라고.”

- 3집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과 애착이 가는 곡은.

“일단 뻔한 가사를 경계했다. 왜냐하면 ‘전쟁과 평화’자체가 무거운 주제인데 어깨에 힘을
준다면 자칫 신파 조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파극은 관객이 준비되기도 전에 배우들이
울어버리니 웃기는 것 아닌가?
그리고 가사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촛불의 바다(11번곡)’로 흐를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1번 곡 의 전주, 9번 곡의 후주, 11번 곡의 전주와 마무리는 선율이 같다).

인공적인 소리를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바이올린,
첼로, 아이리 쉬 휘슬, 오카리나, 하모니카, 정주, 크리스탈 플룻, 아코디언 등의 악기를 연주했고
신디사이저 비중은 최 대한 줄였다. 반주는 가능하면 비우는 방향으로 편곡했다. 음악은 잘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용 타이틀은‘샤이를 마시며’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촛불의 바다’다. 아트록을 해보고 싶다는 건 오래 전부 터 꿈이었다."

"문화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가지 않아도'를 인상 깊게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2002년 월드컵과 대선을 거치면서 한민족의 가능성을 느꼈다. 임진각에서 열린 공연에
노래하러 가다가 구상을 시작했고, 녹음을 했다. 그러다가 미국의 이라크침략에 분노를 느껴
2절에 평화를 바라는 가사를 새 로 만들어 ‘나란히 가지 않아도 2’를 다시 녹음했다.
이미 녹음작업을 마친 상태여서 다시 녹음하느라 비용 이 더 들었다(웃음)."

- 노래를 통해 가닿고 싶은 세상은 어떤 곳인가.

“문화를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목적으로서의 문화와 음악을 존중해주고 즐길 수 있는
사회다.”

- 지난 시절 사회변혁을 외쳤던 역전의 용사(?)들이 무대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던데.

“대학 때 같이 학생운동했던 친구들이 요즘도 정기적으로 모인다.
2주 전 내 음반 출시축하모임 때 작당을 하더라. 자금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는 비용을
마련하겠다고 하고, 연극을 했던 친구는 연출을 돕겠다고 하고... 참 눈물겨웠다.

오는 9월 8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마지막 날 공연에서는 그 친구들과
함께하는 무 대도 꾸밀 예정이다. 학생운동 했을 때 부르던 노래를 같이 부를 거다. 손병휘
개인만의 공연이 아닌, 공연을 준비해준 친구들의 생각까지 담긴 그런 공연을 하고 싶다."

- 독자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우리 모두 양심의 촛불 하나씩 밝히고 살았으면...”

2005-07-02 17:20 ⓒ 2005 OhmyNews


인쇄하기  (작성일 : 2005년 07월 03일 (22:46),   조회수 : 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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