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휘이야기

 

 

 
 

I D

 

PW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병휘이야기
      병휘이야기
      방송기사
      커뮤니티
      예매신청
      Friends

 

 

이   름     손병휘(병휘)   [bhs05@hanmail.net]
제   목     일지 7 후쿠오카에서..
File#1     지진체험.JPG (size : 65.6 Kb)     Download : 1706
File#2     다자이후 천만궁.JPG (size : 98 Kb)     Download : 1706
File#3     기모노를 입은 아이.JPG (size : 48.1 Kb)     Download : 1652
File#4     야마가사.JPG (size : 118.7 Kb)     Download : 1715
File#5     위령제에서 춤을 추는 하연화무용단.JPG (size : 68.9 Kb)     Download : 1652













6(일)

어제는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아 가뿐하게 일어났습니다.
배는 어느덧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에 닿아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배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항해를 해온겁니다.
망망대해를 거쳐 아침에 이렇게 다른 목적지를 보며 눈을 뜰 때는 마치 어렸을 때
하룻 밤 자고 닭장으로 달려가서 둥지에 손을 넣었을 때 달걀이 만져지는 것처럼 신기한
느낌마저 듭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큼직하지만 둔중한 느낌을 주는 건물과
안개가 묵직하고도 여유롭고 음울한 기운이 느껴졌다면 여기는 특유의 깔끔한 건물들과
비 덕분에 매정하리 만큼 상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톡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배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몇 십년전에 주민투표로 아주 근소한 차이로 후쿠오카와 하카타가 통합이 되었기 때문에
예전 하카타의 주민들은 하카타라는 명칭을 되도록이면 지키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항구도 하카타항으로 부른다는 군요. 이 하카타항은 고대로부터 한반도와 일본이
왕래하는 항구로 ‘하카타’라는 이름도 우리의 옛말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부산을 왕복하는 쾌속선이 하루에도 몇차례 있습니다.

수많은 유리로 만들어진 후쿠오카탑과 해변을 잠깐 보고 '후쿠오카 방재센터'로 향합니다.
이곳은 지진, 화재, 태풍등의 상황을 영상과 음향자료,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입구에 들어서니 각 나라의 소방복을 전시해 놓고(부산의 것도 있음) 각종 안전장비와
비상식량등을 파는 간이 판매대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4인 1조로 화면을 보며
소화기로 불을 끄는 실습을 했습니다. 실제로 물이 들어있는 소화기를 들고, 방에서
불이나는 상황이 비쳐지는 화면에 뿜어대는 것인데 잘 하면, 불이 꺼지고 잘 안되면,
불이 다욱 확산되는 화면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우리조는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응접실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상황도 체험했는데 진도 4,와 7의 상황에서
가스레인지를 끄고 탁자 밑에 들어가서 대피하는 과정을 해보았습니다.
많이 흔들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연기가 가득찬 건물안에서
많은 문을 열고 탈출하는 설정도 경험했습니다.
예로부터 자연재해가 많았던 일본인들은 안전에 관한한 도저히 우리가 따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11시 30분 경 버스를 타고 5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천만궁’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10세기초 중앙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서 쫒겨온 비운의 천재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로 여기서 수험생이 기도를 하면 잘 듣는다는 말이 있어 전국에도 여러 곳이 있다는
군요. 게다가 오늘은 아이들이 7살이되면 기모노를 입혀서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날이기 때문에 많이 붐볐읍니다. 오래된 건물들과 정원, 그리고 자신의
아픈부위를 만지면 병이 낫는다는 소의 조각 등이 이채로왔습니다.

점심은 신사의 안쪽에 있는 도시락집에서 먹었는데 한국의 ‘한솥 도시락’에서
김치가 빠졌을 뿐 별 감동이 없는게 아무래도 메뉴설정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한국관광객이 많이 오는 듯 종업원들도 한국사람들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걸어서 개관한지 한달도 안 되었다는 후쿠오카 국립박물관으로 갑니다.
산을 뚫어 만든 두개의 커다란 에스컬레이터와 긴 움직이는 보도를 지나니 커다란
광장과 함께 태양열 지붕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의 위용이 보입니다.
관광객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있는데 한국말을 하는 자원봉사자를 신청하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어!”라는 표정으로 즐겁게 우리를 안내하며
설명을 해줍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래전부터 7월이면 전 하카타를 들끓게 한다는 ‘야마가사마쯔리’에
쓰이는 ‘야마가사’라는 라는 가마였습니다. 각 동네의 명예를 걸고 온갖 장식으로 멋을
낸 가마를 메고 다니는 이 축제는 마지막날 수백명이 교대를 해가며 전속력으로
가마를 메고 달리며 시간을 재는데 부상도 많이 입고 길가의 건물들도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이 하카타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행사로 하카타 남자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보니 일본만화 ‘시마부장’에 야마가사 복장을 입고 티브이의 중계를
보며 숨을 거둔 노인의 죽음을 두고 그 아내가 슬픔을 삼키며
“하카타 남자로서 최고의 임종이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 가마의 실물을 보니 그 규모와 화려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을 각 지역에 따라 갖가지 마쯔리(축제)를 열며 자신들의 단결을 도모해온
것입니다. 어디선가는 비탈을 커다란 통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마쯔리도 있는 것을
티브이로 보았습니다.

1층은 무료이고 2층부터 유료관람이라는데 시간이 없어 1층만 보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쇼핑을 하고 싶어하는 일행이 있어서..
전 별 흥미가 없었지만 모두가 그 일정에 동의를 해서 혼자만 빠지기가 좀 그랬습니다.
이 군중심리라니...

나오다가 꼬치를 굽는 포장마차에서 돼지꼬치를 몇 개 사서 캔맥주와 먹어봅니다.
고기가 일정한 모양과 크기로 반듯하게 잘려서 꿰어져 있는 것이 ‘’역시 일본이야‘라는
생각마저 하게됩니다. ’카날시티‘라는 후쿠오카의 커다란 쇼핑가를 들러 배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갑판에서 징용, 정신대 등.. 일제시대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조상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진오형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하기로 했는데
바람과 파도가 심해 연출단에서 취소를 하더군요. 대표단이 겨우 제문을 읽고...그래도
그 열악한 가운데서도 ‘하연화 무용단’이 진혼춤을 추는 것을 보니
“이 춤마저 없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되며 새삼 ‘문화의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저는 가수들과 6층 술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카날시티에서 산
특산물인 명란젓과 컵라면으로 조촐하게 마시려는데 삽시간에 문화사절단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또 왁자하게 판이 벌어졌습니다.
애초 예정되었던 한,일 합동 문화제가 무산된 것이 아쉬운 모양이지요.
위령제 준비로 식사를 못했던 춤꾼들이 제가 골라 온 일제 컵라면을 잘 먹습니다.
소금간에 해물이 들어있는 그 ‘Cup Needle'은 제가 일본에 가갈 때 아침이
여의치 않으면 삼각김밥과 먹는 것이지요.

파도가 4-5미터로 심해지기에 선원들이 갑판을 봉쇄했습니다. 7층 스낵바로 가니 김하기,
주강현 선생등이 있어 자리에 앉습니다. 민속학자인 주강현선생은 입담도 대단해서
저는 한참 듣다가 살며시 빠져나왔습니다. 12시 경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인쇄하기  (작성일 : 2005년 11월 30일 (23:33),   조회수 : 3606)

이전글    일지 8 망중한, 그리고 게릴라 콘서트
다음글    일지 6 - 독도를 지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