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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FOLKKING   [purero@empal.com]
제   목     [음반리뷰] 손병휘 4집 '삶86' --대중음악비평웹진<가슴>(서정민갑)
File#1     손병휘_4집.jpg (size : 52.8 Kb)     Download : 1858




싱어송라이터 손병휘가 내놓은 네 번째 앨범의 제목은 [삶86]입니다. ‘386’이 아니라 ‘삶86’이라 명명한 것은 1980년대의 치열했던 삶을 추억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올해가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이 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서슬 푸르던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겨우 멈춰진 지 20년이 된 지금, 386인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그 해 6월과 우리가 함께 지나온 20년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은 앨범의 제목처럼 386세대의 자전적 기록에 가깝습니다. 20년 전에는 항쟁의 주역이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386세대의 관점으로 자신들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이번 앨범의 주된 내용입니다. 먼저 386세대의 오늘은 <무대리를 위하여>와 <동창생>이라는 곡에 잘 드러납니다. ‘파김치 된, 아침형 인간’으로 ‘마음에도 없는 아첨’에 ‘억지로 웃어도 보’는 직장 생활에 시달리다 ‘애꿎은 소주나 한 잔’하고 ‘사는게 이런 게 아니냐고 스스로 위로해보’는 모습은 아마 지금 그 세대 누구나 경험하는 현실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오래된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기도 하면서 ‘이미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며 씁쓸해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손병휘는 이렇게 팍팍한 현실속에서도 과거의 운동을 추억만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는 ‘집회장의 열혈청년이었을 수도 있’던 누군가가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추억’만 있는 운동을 말하는 세태를 비판하며 20년전 순결하고 진실했던 꿈의 원형을 다시 한번 노래합니다. 이젠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을 지나, ‘축배가 너무 빨랐지’만 그래도 ‘너무 늦진 않았’다고 자위하는 그의 모습은 당시의 기억을 동력으로 오늘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내면을 잘 보여줍니다. 사실 만인의 염원이었던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는 있지만 갈수록 물신화되어가는 현실속에서 부의 양극화는 이미 염려할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상황입니다. 6월항쟁을 기반으로 두 번이나 정권을 획득한 민주개혁세력조차 신자유주의에 포박되어 민중의 삶을 도탄으로 몰아넣고 자중지란하고 있는 현실은 암담합니다. 그 와중에 수구반동세력들은 ‘독재자 기리는 기념관 짓겠다’거나 ‘살인마 기리는 공원을 만든다’며 공공연하게 독재의 과거로 돌아가기를 꿈꾸고 있는 지경입니다. 손병휘는 그러나 결단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며 군부독재를 막고 민주주의를 부활시킨 1980년대의 가치와 노력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그는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입니다. 그는 ‘똑바로 가진 못했지만 한번도 거꾸로 가진 않았’다며 ‘우리는 언제나 바다로 갈’것을 믿는다 말합니다. ‘우리가 꿈꾸던 그런 세상은 아직도 멀기만’ 하지만 ‘나의 노래가 그대의 그늘진 삶에 작은 위로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한다 말합니다. 그는 ‘기록은 남지 않아도 메달도 없겠지만’ ‘언젠가는 풀코스도 해내’리라 믿는 마음으로 ‘오늘도 달’린다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으로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의 소중한 자화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386의 관점으로 1987년 6월 항쟁을 돌아본다해도 영광의 역사만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달라진 현실 때문입니다. 1980년대 운동의 영광을 말하는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과거의 운동을 발판으로 권력의 핵심부에 진출해있지만 그들은 과거를 잊고 현재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명확하게 비판하지 않고, 또한 시민사회운동세력 내부의 관성적인 인식과 실천이 사회 진보의 발목을 잡고 있음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언급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 역시 지적할만합니다. 그는 ‘지금도 계속되는 꿈’이나 ‘한번도 멈추지는 않’은 역동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할지 모르지만 이미 권력의 단물에 길들여져 민중의 새로운 억압자로 변신한 일부 운동세력의 변화나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에 매몰되어 있는 사회운동세력의 문제가 극복되지 못한다면 1980년대의 꿈이 현재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남아있는 수구보수세력도 문제지만 이제는 우리 내부의 문제 역시 함께 들여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1987년을 돌아보며 다함께 바다로 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그가 예전에 불렀던 노랫말처럼 지금은 ‘일치를 위한 확연한 갈라섬’이 더 필요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손병휘의 네 번째 앨범 [삶86]이 가진 미덕은 1980년대의 가치가 왜곡되거나 폄하되는 현실속에서 그 가치를 복기한데 있지만 사실 그 아름다움은 단지 노랫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중가요가 노랫말에만 신경을 쓰고 음악적으로는 전혀 고민이 없는 것처럼 폄하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대부분의 민중가요 창작자들이 이전과는 다른 어법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최근의 민중가요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손병휘는 1998년 솔로활동을 시작한 이후 맹렬하게 창작활동을 계속하며 2년에 한 장꼴로 음반을 발표하는 성실한 뮤지션입니다. 안치환, 정태춘 정도를 제외하고 4번째 앨범을 발표한 민중가요 개인 창작자는 겨우 이지상과 손병휘 정도라는 사실은 그의 성실성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첫 앨범 [속눈썹]에서는 어쿠스틱한 포크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두 번째 앨범에서는 보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감행했던 그는 세 번째 앨범에서 비로소 자신의 음악적 역량이 만만치 않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를 주제로 분명한 컨셉과 밀도높은 음악이 결합된 3집은 그가 민중가요의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역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손병휘의 네 번째 앨범은 지난 3집보다 더욱 발전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거론했듯 ‘삶86’이라는 명확한 컨셉과 자기 인식도 돋보이지만 특히 그는 이번 앨범의 모든 노랫말과 곡을 스스로 다 써냈습니다. 지난 앨범까지 많은 곡들의 가사를 도종환, 박노해 등 진보적 서정시인들의 시로 대체했던 것에 비하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할만 합니다. 또한 앨범에 수록된 여러 장르 곡들의 완성도 역시 매우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86세대의 낙관적인 현실인식과 고백이 잘 드러난 서정적인 노래말들은 손병휘가 좋은 가사를 써낼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임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의 정직하고 활기찬 목소리와 세련된 편곡으로 인해 민중가요의 상투성을 탈피하고 대중음악으로서의 완결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포크, 포크록, 아트록같은 다소 복고적인 장르를 빌었음에도 귀에 쉽게 감기는 멜로디의 매력과 함께 곡 사이 사이의 빈틈을 빛나게 채워주는 문건식의 일렉기타와 정은주의 건반은 음반의 어떤 곡도 낡지 않고 새로운 곡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다소 일면적일 수도 있는 노랫말들 역시 멜로디를 일방적으로 좇아가지 않는 이들의 연주를 통해 상투성을 탈피하며 보다 다면적인 의미와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예를 들어 <무대리를 위하여>나 <그때를 아시나요?>같은 가벼운 곡들 사이에 조곤조곤하게 숨어있지만 묵직한 문건식의 일렉기타는 손병휘가 결코 포크에만 머무르는 뮤지션이 아니라 록에도 감각이 있고 프로듀싱 능력도 뛰어난 뮤지션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때를 아시나요?>와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 등등 곳곳에서 다양한 면모를 뽐내는 정은주의 건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지만 특히 이번 앨범의 백미는 세 번째 곡 <그 때를 아시나요?>에서부터 여섯 번째 곡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로 이어지는 메들리입니다. 흡사 386이라는 숫자를 염두에 둔 듯 3번에서 6번으로 이어지는 이 네 트랙은 노랫말의 내용도 그렇고 곡들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하며 앞곡의 멜로디를 계속 이어가는 메들리 형식으로 배치된 형식에서봐도 손병휘 4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고적인 로큰롤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그 때를 아시나요?>와 아스라한 추억을 건드리며 응원하는 듯한 <386>의 트럼펫 연주는 <오래된 정원>의 통렬한 보컬로 이어졌다가 손병휘 4집의 베스트 트랙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특히 이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멜로트론의 아트록 사운드를 구사하며 역사의 장구한 흐름을 낙관하는 <강물>은 8분동안의 노랫말과 연주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인해 손병휘의 음악적 다양성과 진면목을 보여주는 최고의 싱글로 기록될만한 곡이며 또한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민중음악의 대표적 창작물로 기록되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특히 곡의 말미에서 배치한 고 문익환 목사님의 절규는 곡의 감동을 배가하는 뛰어난 장치로서 그 어떤 것보다 당시의 뜨거웠던 역사를 현재화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부 주도로 6월 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전국 각지에서 기념 행사가 이어지는 것처럼 손병휘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1980년대에 대한 이야기로 음반을 채워내며 지나온 역사에 대한 화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역사적인 메시지의 노래뿐만 아니라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고 잠 못 이루는 모습을 고백하는 솔직한 면모를 보이며 하루의 삶으로 앨범을 구성한 컨셉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결국 손병휘는 이번 앨범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했을뿐만 아니라 386세대로서의 자기 발언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영석등과 함께 2000년대의 민중가요를 책임질만한 저력과 의식의 뮤지션임을 증명해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안치환에만 집중되어 있는 민중가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손병휘의 이름과 그의 음악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4번째 앨범은 실제로 ‘항상 좋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아’진 결과물로서 예전의 민중가요와는 음악적으로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오늘 민중가요의 완성도를 확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반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과거를 반복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현재를 껴안고 미래를 말하는 노력만이 아픔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빛나는 역사를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제는 운동세력의 조직적 지원과 도움보다는 오히려 그들 때문에 속 끓이면서 힘들게 자신의 음악을 이어가야 하는 민중음악계의 현실속에서 이처럼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이들은 다 알 것입니다. 모쪼록 1980년대를 겪은 사람들이나 혹은 그렇지 못한 이들 누구라도 이 음반과 함께 자신의 삶으로 1980년대를 이어가고 넘어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늦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www.gaseum.co.kr


인쇄하기  (작성일 : 2007년 06월 13일 (09:27),   조회수 : 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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