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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FOLKKING   [purero@empal.com]
제   목     컬처뉴스가 만난 사람] 《삶86》낸 민중가수 손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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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잘생기게 나왔으면 좋겠다”
[컬처뉴스가 만난 사람] 《삶86》낸 민중가수 손병휘

2007-06-19 오후 5:41:32 [ 인터뷰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정리 안효원 기자]



지난 2006년, 우리사회가 여전히 격동의 사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월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발표되면서 시민사회에 ‘반 한미FTA’ 운동을 불러일으켰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이 계속되었다. 그 요동치는 한국사회의 이곳저곳에 기타 하나를 들고 오가는 사람이 있다. 민중가수 손병휘이다. 그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함성을 더 크게 했고, 때로는 사람들을 더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손병휘가 최근 4집 앨범 ≪삶86≫을 발표했다. ≪삶86≫은 “나와 내 세대를 응원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듣는 이들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힘이 있다. 새 앨범을 내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손병휘를 지난 11일 민예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23일(토)에 열리는 콘서트 <그래, 난 386이다!>에서 안치환과 함께 공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손병휘가 부르고 싶은 이 시대의 희망 노래가 무엇인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와 함께 들어봤다.

서정민갑(이하 서정): 벌써 4집 앨범을 냈다. 축하한다.

손병휘(이하 손): 고맙다.(웃음)

서정: 앨범 제목이 《삶86》이다.

손: 올해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또 하루의 일상을 통해 나와 내 세대를 얘기하고 싶었다. 제목을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라고 할까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제목이 ‘삶86’이다. <조선일보>가 처음 사용한 ‘386’이라는 말은 쓰기 싫었다. 또 386하고 6&#8228;10항쟁이 동일시되면서 대학생들만의 운동이 되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1980년대를 기억하고 6&#8228;10 항쟁의 이상을 구현하려면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서정: 예전에 인터뷰 할 때 지극히 사적인 곡들로 4집을 낸다고 공언했다.

손: 지극히 사적이라고 하더라도 앨범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태생이고, 사적인 것이라고 해도 역사의식이 안 들어갈 수 없다. 앨범의 주제가 ‘삶86’이 되면서 <삶86>이나 <오래된 정원> 같은 노래가 들어갔다.

서정: 본인 스스로 ‘386 세대’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가.

손: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한국인임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단적으로 고민하고 집단적으로 뛰어다녔던 세대였다. 지금 정치권의 386 세대들이 욕을 먹고 있지만, 386 세대들이 노동현장, 반전평화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 등 수많은 현장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무엇을 갖고 노래하고, 어떤 방식으로 얘기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서정: 공이 있다면 과도 있을 텐데, 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손: 기본을 제대로 닦지 못한 상태에서 샴페인이 터진 것이다. 386의 대표주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흘러가면서 열심히는 하고 있으나, 역량이 부족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서정: 현재 386 세대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주목받은 이들이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손: 사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라의 큰 일이 있으면 동참하고, 소신을 같고 노동, 한미 FTA, 대추리, 새만금 등의 문제에 노래로 반응할 뿐이다. 나는 386 정치인들이 각자 당에서 당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의 모습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음악을 통해 나와 내 세대를 격려하고 싶었다.


서정: 과거의 독재세력이 회귀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손병휘씨가 참여하는 집회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386 정치인들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집회에는 참석하면서 그것을 노래로 만들지 않는 것은 할 말을 아직 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손: 이해된다. 그런 노래들 같은 경우 쓰는 사람이 있고, 나 또한 쓸 수 있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음반에 넣으면 1년만 지나도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현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노래를 통해 발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하지만 전제는 음악이 잘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추리의 경우 정태춘 선배만큼 잘 쓸 자신이 없다. 매향리 역시 안치환씨만큼 고민하지 못할 것이다.

서정: 예전에도 한번 했던 얘긴데, 음반에 담긴 정치적인 고민은 민주 대 반민주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독재자의 이름으로 공원을 만드는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 양극화의 문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손 :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그럼 사람이 한 음반에서 그런 것을 다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연영석의 음반에 노동자가 있고 비정규직이 있다면, 나의 음반에는 시민과 중산층이 있다. 무엇을 갖고 노래하고, 어떤 방식으로 얘기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대리를 위하여>에는 직장인 얘기가 나오는데 연영석은 이런 노래를 만든 적이 없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분석하고 어떤 심정으로 했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왜 그런 노래는 없냐고 물어보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서정: 손병휘의 행동은 현재 사회 현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작품은 그것과 떨어져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 부담이 있다. 또 그런 음악을 실제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음악적으로 내 성에 안찼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얼마나 많은 선동가가 있었고, 이론가가 있었나. 각 과, 한 학년에 한두 명씩은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지금은 뭐하고 있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인식할 수 있는 만큼의 실천을 하고자 노력한다. 이를테면 대추리나 FTA에 대해서 적어도 90% 이상 확신하고 있더라도 예술적으로 제대로 형상화 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 노래를 발표할 수 없다. 나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를 하는 사람이다.

서정: 이번 앨범을 내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손: 얼굴이 잘생기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웃음) 컨셉이 두개였다. ‘하루’와 ‘386’이었는데, 그것 못지않게 가장 신경 쓴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3집까지는 일렉기타로 쳐도 될 것을 통기타로 쳤다. 포크사운드에 충실하고, 많이 비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4집에서는 통기타로 칠 수 있는 것을 일렉기타로 쳤다. 포크록이라고 할까. 곡을 쓰다 보니까 가사를 다 쓰게 됐는데, 구어체로 쓰다 보니까 곡들도 경쾌해졌다.

서정: 4집에서는 지난 앨범과 달리 가사와 곡을 전부 다 본인이 썼다.


"≪삶86≫은 음악인으로의 진화로 볼 수 있는 앨범이다"
손: 주제에 맞추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나와 내 세대에 대해 얘기하는데 남들이 쓴 것을 쓸 수 없었다. 또 남들이 쓴 것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일종의 음악인으로의 진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4년 전에 끄적거리던 것들이 그동안 답이 안 나왔었는데, 이번 1월 5일에 지난 가사집을 보는 순간 살이 붙었다.

서정: 얼마나 만족하는가.

손: 51% 이상이다.(웃음)

서정: 가사를 많이 썼다.

손: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 나도 진화하고 있구나.’ 처음으로 곡을 쓴 게 1997년이었고, 첫 음반에 곡이 들어간 것이 1998년 노래마을 4집이었다. 첫 독집을 냈던 게 2000년이었는데 전부 다 시였고, 2집 때 내가 쓴 곡이 들어갔다. 3집은 내가 온전하게 작&#8228;편곡 전체를 총괄했고, 4집때에는 가사까지 내가 다 하게 됐다.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웃음)

서정: 지난 앨범부터 컨셉 앨범을 만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손: 올해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라는 비틀즈 앨범의 발매 40주년이다. 그전까지 앨범은 싱글의 집합체였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이르러 일관된 주제로 앨범을 만들었고, 그 점을 상당히 감명깊게 생각한다. 그 이후 아트록 밴드들이 이런 것을 했다. 유통의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지금 앨범이라는 것이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 그런데 굳이 앨범을 택한 것은 싱글만으로 담을 수 없는 일관적인 흐름을 담고자 했던 것이다.

서정: 3번부터 6번까지 메들리 구성을 했는데, 386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한 것인가.

손: 그렇다. 3번부터 6번까지는 한곡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3번에서 ‘너 요즘 뭐하고 있느냐’, ‘옛날만 추억하고만 살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되지’라고 하고, 4번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데’라고 한다. 또 ‘현실은 이렇지 않느냐’가 5번이고, ‘그러니까 좀 잘해보자’가 6번이다. 아니, ‘잘해보자’라는 것보다는, 박준흠 씨가 말한 ‘우리가 너무 일찍 잘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표현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서정: 전체적으로 민중가요다운 노랫말들인데 사운드는 단순명료한 민중가요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하기 힘든 곡들도 많고, 정교하고 복잡한 사운드도 많다.

손: 일단 코러스가 많이 들어가 중층적인 사운드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중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에 비해서 비트가 많이 들어가고, 코러스가 많이 들어가서일 것이다. 곡은 따라하기 쉽지 않은가. (웃음)

서정: 멜로디와는 별개로 연주되는 기타연주가 꼭 들어가 있다.

손: 세션으로 참여한 기타리스트의 개성이다. 보통 백킹이라고 하는, 코드에 맞춰서 연주하는 것을 이 기타리스트는 별로 안 좋아했다. 나도 판에 박힌 진행을 좋아하지 않아 그것을 존중했다. 이번 앨범에는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사운드가 있다.


"프리다칼로는 단순한 세션이 아닌 음악
동료이다"
서정: 처음부터 그걸 감안하고 시작한 것인가.

손: 3집까지는 프리다칼로와 함께 했다. 그런데 4집 들어가면서 고민을 했다. 이번에 사운드를 바꿀 건데 세션도 바꾸면 어떨까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런저런 취지를 얘기했다. 홍대 앞에서 뒷풀이 할 때 드러머와 기타리스트가 “형, 형 앨범에 우리 안 불러도 전혀 섭섭하게 생각안할 테니까 다르게 표현할 부분이 있으면 다른 세션 불러서 해라”라고 해서, 술 한 잔 마시며 좋게 해결했다.

서정: 전체적인 음악의 색깔을 지정해 준 것인가. 아니면 연주자의 느낌을 존중한 것인가.

손: 일렉기타 중에서도 스트로크 백킹은 내가 연주한 게 좀 있다. 표지에 내가 안고 있는 할로바디로 연주한 건데, 약간 풍부하면서 맑은 소리를 얻었다. 일렉기타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톤을 잡는 것이다. 톤을 잡고 내가 ‘OK’하면, 그 톤을 가지고 연주한다. 어떤 때는 기타리스트가 연주를 해보고,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서정: 전체적으로 기타연주가 튀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조율됐다.

손: 나는 기타가 충분히 부각이 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믹싱스타일에 대한 건데, 믹싱 기사가 가지고 있던 사운드 개념에 의해 덜 거칠게 나왔다. 그리고 내 목소리 자체가 거칠지 않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지저분했다면, 다른 악기들의 톤도 사납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정: 손병휘씨는 포크음악에서 출발했지만, 록으로 만드는 작품들이 개성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손: 내 오랜 친구는 이번 앨범에서 <니베아 향기처럼>이 제일 좋다고 했다. 내가 록에 강점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고, 그 얘기를 들었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다.(웃음)

서정: 포크와 아트록, 록큰롤 같은 복고적인 장르를 세련되게 만들어 내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는가.

손: 노하우보다는 사춘기 때 들었던 음악이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21세기에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그때 느꼈던 감동을 현재의 음악 언어로 나와 내 주변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을 한다.

서정: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가 앨범의 주제곡인 것 같은데, 이 곡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며, 아트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손: 항상 아트록에 대한 동경이 있다. 1집부터 들어 보면 알겠지만 그런 곡이 하나씩 들어있다. “강물은 똑바로 가지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는 믿음을 갖고, 좌절하고 깨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라는 말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다.

서정: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인다. 특히 문익환 목사님의 연설이 인상적이다.

손: 애초에 기획했던 것은 아닌데, 믹싱 단계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문익환 목사님은 품이 넓고 대륙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큰 어르신이다. 문익환 목사님께서 이한열 장례식 때 조사를 했다. 내가 70년대 학번이라면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자”라고 했겠지만, 80년대 학번이니까 “광주정신이나, 1987년 6월 항쟁 정신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표현하는데 문익환 목사님의 조사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서정: 4집 앨범을 만들면서 처음 울었다고 하는데, 어떤 곡이었나.


"예술행위가 자기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손: <내 인생의 마라톤>을 만들고, 부르면서 눈물을 비친 적은 없지만 울컥했다. “메달도 없겠지만, 경기도 끝났겠지만”, 이런 부분들은 내 얘기일 수 있다. 그리고 <삶86>의 “한번쯤은 뜨거웠던,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구절은……. 그리고 <강물은...> 같은 경우도 믹싱한 것을 집에서 듣다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다. 예술행위가 자기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게 지나친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이 있구나’ 라고 이번에 느꼈다.

서정: 손병휘씨는 낙관적이면서 정직한 역사인식이 돋보이고, 보컬도 밝다. 패배나 좌절, 상처를 잘 말하지 않고, 목소리에도 암울한 정서도 없는 편이다.

손: 암울해 봤자 도움이 되는 게 없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노무현 정권이 끝나는 상황에서 사회양극화, 대미종속, 노동자&#8228;농민의 문제들은 점점 암담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희망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패배와 좌절, 상처는 남들이 많이 얘기했다. 다 아는 것들은 묻어두고, 현재와 미래가 얘기하자는 것이다. 또 목소리 톤 자체가 우울하지 않아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다.

서정: 운동이 분화되면서 서로의 운동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민중음악을 비롯한 민중예술에 대한 인식이 미천해 민중음악가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손: 그런 것은 민예총에서 발언해야 한다. 일개 가수 나부랭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민중예술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민예총이 못하고 있다는 얘기와 똑같은 얘기다. 민예총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서정: 민중가요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전문 레이블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손: 몇몇 기획자가 레이블을 설립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민예총이 중심이 되서 프로덕션을 만들어야 한다.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을 생산, 소비, 유통할 수 있는 진보진영의 레이블이나 전문공연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음반이나 작품이 활발히 유통되면 민중가요뿐 아니라 이쪽 진영의 예술가들이 꾸준히 나올 것이다.

서정: 후배 민중가요 창작자들이 거의 없다.

손: 장점이 없으니까 모이지 않는 것이다. 굳이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돈도 안 되고, 음악도 안 좋은 것 같고, 사람들이 안 좋아해주는 것 같으니까. 사람들이 성원해 주고, 음반도 사고, 공연도 많이 봐주러 간다면 오히려 인디쪽이나 대중가요에서 이쪽으로 올 것이다.

서정: 최근 민중가요 창작자들이 조직적인 연대활동보다 개인적인 창작활동에 골몰하고, 집회장에서 공연하기보다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한다. 이는 인디음악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손: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음악 표현의 욕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또 밖에서 노래할 공간이 없으니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가장 유사한 데가 인디씬이다. 게다가 집회장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응원가밖에 없으니까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지만 희망을 보고 열심히 삽시다" 자신의 음악과 웃음이
먼 길을 가는 이들의 작은 쉼이 되기를 바라는 가수 손병휘.
그의 여정 또한 많은 이들과 함께하길 바란다.
서정: 민감한 질문인데, 손병휘씨는 활동도 오래하고 4집까지 발표했는데 대중적인 인지도는 좀 떨어지는 편이다.

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가. 당신들이 더 잘 알텐데. 히트곡이 없는데 어떡하는가.

서정: 4집 발매와 함께 음악적인 프로모션이나, 특별한 대외적 활동을 계획했는가.

손: 내 홈페이지에 음악작업을 5종 경기에 비유한 게 있다. 작곡, 편곡 등 녹음 전의 작업이 1종목이고, 녹음할 때까지가 2종목, 믹싱과 후반작업, 자켓작업이 3종목이다. 또 홍보가 4종목이고, 콘서트가 5종목이다. 이 5종 경기를 혼자 다 하는 거다. 지금은 홍보라는 4종목을 하고 있다. 3작업까지는 참 좋았는데 4종목부터는 부담이 된다. 그냥 열심히 하면서 올해 안에 콘서트를 하고 싶다.

서정: 민중음악이 어렵다. 세도 미미하고, 좋은 음악이 나와도 우물 안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인데, 지금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손: 현재 음반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모바일을 통한 유통구조는 자금력과 기획력이 있는 데서 가져가고, 창작자의 몫은 더 줄어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 소비를 이어주는 유통구조가 필요하다. 또 민중가요 진영은 주로 공연을 통해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 음반을 팔고 싶으면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콘서트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작은 곳에서 초청공연이 오면 양해를 구해서 공연을 하고 음반을 파는 것이다. 누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집회장에서는 음반을 잘 안 산다. 프로덕션화나 제작, 유통 시스템이 관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차피 자금력하고 기획력을 가지고 싸울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개별적으로 가다보면 한때 명나라를 먹었지만 중화민족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만주족처럼 될 것이다. 한때 1980~90년대에는 민중문화라는 게 TV에도 나오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차트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냥 사라져버릴 꼴이 된 것처럼.

서정: <컬처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손: “음악없다 실망말고, CD사서 행복하세”. 이런게 좋을까? 아니면 “내가 산 CD 한 장, 문화강국 이뤄낸다”.(웃음) 뭐, 그런 얘기해도 어차피 안 살테니까 다 부질없는 얘기다.(웃음) <컬처뉴스>를 보는 분들은 말이 통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에게 구구절절 얘기하는 것은 주제 넘은 짓 같고, 그냥 “열심히 삽시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편집 : [안효원]


인쇄하기  (작성일 : 2007년 06월 21일 (17:53),   조회수 : 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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